“그들이 좇는 것은 기독교가 아닌 세속 권력입니다”
세상에 예수님의 이름을 언급하며 기독교를 표방하는 가짜들이 넘쳐납니다. 그 사람들이 올바르게 살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그 더러운 입에 예수님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본인의 행실을 떠나서, 마음 속에서 무엇이 올바르고 잘못된 것인지를 구분할 줄 아는 양심이 있다면, 적어도 자신이 잘못한 일을 계속 하더라도, 그 일이 잘못된 것인 줄은 적어도 알고는 있습니다. 잘못된 것인줄 알면서도 계속 잘못된 일을 하면서 일말의 양심의 가책은 느끼는 것이죠.
그러나 이 잘못된 일이, 잘못임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옳은 일인양 계속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본인 일들에 어떤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 기독교의 정신 등을 이용하는 왜곡되게 이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기독교와 기독교 민족주의는 같지 않습니다. 전자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신앙이며, 후자는 기독교적 상징과 언어를 빌려 국가 정체성과 정치 권력을 결합하려는 정치 이데올로기입니다. 학술·현장 연구에서도 기독교 민족주의를 “기독교와 미국 시민질서의 융합을 이상화·옹호하는 문화적 틀”로 정의합니다. 이는 신앙 자체가 아니라, 신앙을 국가 정체성과 권력 동원의 수단으로 재해석하는 정치적 프레임입니다.
1) 개념 구분: 기독교 vs 기독교 민족주의
- 기독교(Christianity)는 십자가 복음, 회개와 믿음, 이웃 사랑, 겸손, 보편 교회성을 핵심으로 하는 신앙입니다. 국가와 정당은 도구적 차원의 선한 질서일 수 있지만, 교회의 사명(복음·제자도)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 기독교 민족주의(Christian Nationalism)는 “우리 국가가 본질상 기독교 국가여야 한다”는 서사 아래, 기독교적 상징과 가치를 국가 정체성과 시민권의 경계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합니다. 조사·연구에 따르면 이 이념은 권위주의 성향, 배타주의, 소수자 배제와 결합하기 쉽고, 민주주의 규범을 약화시키는 경향을 보입니다.
| 구분 | 기독교 | 기독교 민족주의 |
| 정체성의 중심 |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입니다 | 국가/민족 정체성과 기독교 상징의 결합입니다 |
| 권위의 원천 | 성경과 그리스도의 주권입니다 | 국가 권력과 다수 문화의 규범입니다 |
| 교회·국가 관계 | 정교 분리와 상호 책무를 인정합니다 | 교회 언어로 국가 프로젝트를 정당화하려 합니다 |
| 타자 인식 | 모든 이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보편 존엄을 강조합니다 | “진정한 국민”의 범주를 협소화하기 쉽습니다 |
| 수단과 방식 | 말씀·성례·제자도의 비강제적 설득입니다 | 입법·행정·징벌 등 국가 강제력에 의존하기 쉽습니다 |
| 민주주의 규범 | 다원성과 양심의 자유를 지지합니다 | 권위주의·배타주의와 결합 소지가 큽니다 |
| 신학적 오류 | 우상숭배를 경계합니다 | 국가/정당의 우상화 위험이 큽니다 |
이 같은 구분은 학계·시민단체·복음주의 내부 비판에서 폭넓게 공유되는 틀입니다.
2) 왜 기독교 민족주의가 위험한가
- 신앙의 도구화와 우상화입니다. “기독교 국가”라는 구호가 신앙을 국가 권력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며, 복음을 정당 플랫폼에 종속시킵니다. 복음주의 내부에서도 “국가 권력이 필요해지는 신앙은 이미 그 신을 잃었다”는 경고가 나옵니다.
- 민주주의 규범의 약화입니다. 대규모 조사에선 기독교 민족주의 성향이 권위주의, 배타주의, 정치적 폭력 용인과 상관하는 경향이 확인됩니다. 1·6 의사당 폭동을 분석한 연구·기사는 기독교 민족주의의 동원 논리를 중요한 변수로 지목합니다.
- 소수자 배제와 시민권의 위계화입니다. “진정한 미국인/국민”의 기준을 기독교 문화권에 가깝게 재단하며, 이민자·타종교·비신자를 주변화합니다.
- 교회의 공적 신뢰 훼손입니다. 교회가 특정 정당·정치인을 신학적 언어로 감싸면, 교회는 정권 교체와 함께 신뢰도가 요동치며 복음 증언이 손상됩니다.
3) 복음주의 내부의 비판: 파이퍼·켈러·러셀 무어
3-1.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님의 요지

-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복음의 전진은 국가 권력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그리스도는 시민정부의 칼에 기대어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르치거나 퍼뜨리도록 의도하지 않으셨다”고 못 박습니다. 이는 국가 권력으로 신앙을 강제·확대하려는 시도(=기독교 민족주의)의 정당성을 근본에서 부정합니다.
- 애국심의 한계를 분명히 합니다. 애국 자체는 감사를 표현하는 질서이지만, 그 충성이 그리스도에 대한 최종 충성을 잠식하면 곧 우상숭배가 된다고 경고합니다.
- 그는 또한 “하나님은 더 이상 어떤 정치적·민족적 단일 집단을 통해 자신의 구원 사역을 수행하시지 않는다”고 설명하며, 교회(복음 공동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고 말합니다. 특정 국가를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하는 발상에 신학적으로 제동을 겁니다.
3-2. 팀 켈러(Tim Keller) 목사님의 요지
- 팀 켈러 목사님은 정당 동일시의 금지를 일관되게 강조했습니다. 그는 「뉴욕타임스」 오피니언에서 “그리스도인은 양당 체제에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다”고 했고, 교회의 명령(복음·정의·자비)을 특정 정당 강령과 등치시키는 것은 신학적·실천적 오류라고 지적했습니다.
- 요지는, 성경의 원리와 정책적 해법은 동일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라”는 계명은 분명하지만, 어떤 조세·복지·이민·생명 정책 조합이 그 목표를 가장 잘 실현하는지는 기독교 내부에서도 판단이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를 특정 정당에 고정하면 복음의 보편성이 훼손되고 선교 신뢰가 추락합니다.
3-3. 러셀 무어(Russell Moore) 목사님의 요지
- 러셀 무어 목사님은 기독교 민족주의를 “피와 땅의 민족주의가 기독교 상징을 전유한 것”이라고 규정하며, 세속 권력의 혼동을 우상숭배로 비판합니다. “국가의 외형적 통제를 통해 속사람이 새로워진다고 믿는 착시”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합니다.
- “국가의 힘이 필요한 종교는, 이미 자기 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종교”라는 경고도 덧붙입니다.
4) 정리: 기독교 민족주의를 넘어, 복음의 공공성으로
결론적으로, 기독교 민족주의는 신학적으로는 우상숭배의 유혹이며,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와 배타성을 강화하여 민주주의를 약화시킬 위험이 큽니다. 교회가 권력의 언어를 빌려 자신을 정당화할수록 그리스도의 복음과 제자도는 흐려지며, 공적 신뢰는 추락합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이 말쑴하시듯 복음의 진전은 국가 권력의 칼이 아니라 말씀과 성령으로 이루어집니다. 켈러 목사님이 강조하듯 교회는 어떤 정당에도 “완전히 들어맞지” 않으며, 바로 그 독립성 때문에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분명히 붙들어야 할 신앙과 양심의 자유이며, 다원 사회에서 기독교가 기여할 수 있는 겸손한 공공성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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