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월 23일 앤드루스 합동기지까지 직접 나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를 맞으며 극진한 예우를 갖췄습니다. 시진핑이 지난 5월 베이징을 찾은 트럼프의 공항 영접에 정치국에서 물러나 국가부주석이란 한직에 있던 한정을 내보낸 것과 대조되는 장면이었죠.

백악관 환영식에서 트럼프가 꺼낸 돌발적 역사 스토리가 화제인데요, 트럼프는 공통의 이익이 대양을 가로질러 양국 국민을 이어 왔고, 그것이 "우리를 제2차 세계대전의 동맹으로 만들었다"며, 일본 제국과 싸운 미국인 의용 비행대 '플라잉 타이거스'를 칭찬했습니다. 이에 시진핑은 두 나라가 "파시스트 침략에 맞서 함께 싸웠다"고 화답했습니다. 그날 저녁 국빈만찬에서는 "일본 군국주의 침략자"까지 등장했죠. 이 장면은 트럼프가 뉴욕 유엔총회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만난 지 이틀 뒤에 연출되었는데요, 이는 다카이치가 총회 연설에서 유엔헌장의 '적국 조항' 삭제를 요구한 직후이기도 합니다.
뉴욕타임스는 시진핑이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앞세워 일본을 신뢰할 수 없는 '적성국가'로 낙인찍음으로써, 미·일 사이의 '전략적 이간질'를 시도한다고 평가했고, 일본의 주류 언론들도 미국 대통령이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고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팩트에 충실하자면, 미국이 실제로 함께 싸운 '중국'은 장제스의 중화민국이고, 그 계승자가 대만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어느 문안에도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이 뉴스를 이해하려면 "중국"이라는 이름이 지난 100여 년 동안 두 개의 정부를 가리켜 왔다는 점을 먼저 아셔야 합니다.
1. 청나라의 몰락과 중화민국의 탄생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지고, 1912년 쑨원을 중심으로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인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이 세워졌습니다. 이때 대만은 중국 영토가 아니었습니다.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한 뒤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대만을 일본에 넘겼고, 이후 50년 동안 대만은 일본의 식민지였습니다.

중화민국 안에서는 두 세력이 경쟁했습니다. 쑨원이 만든 국민당과 1921년 창당한 공산당입니다. 두 당은 한때 손을 잡았지만(제1차 국공합작), 쑨원 사후 국민당을 이끈 장제스가 1927년 공산당을 숙청하면서 적이 됩니다. 쫓기던 공산당은 '대장정'을 거치며 마오쩌둥 중심으로 재편됩니다.
2.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1937년 일본이 중국 본토를 전면 침략하자 국민당과 공산당은 다시 손을 잡고 항일전에 나섭니다(제2차 국공합작).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참전하면서 중국은 연합국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당시 국제사회가 인정한 중국의 합법 정부, 그리고 미국이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며 함께 싸운 정부는 장제스의 중화민국 국민정부였습니다. 1943년 카이로 회담에 루스벨트, 처칠과 나란히 앉은 사람도 장제스였고, 이 회담에서 일본이 빼앗은 대만을 중화민국에 돌려준다는 원칙이 발표되었습니다.

공산당 군대도 항일 투쟁을 벌였지만, 연합국을 대표한 공식 정부는 아니었습니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자 중화민국은 대만을 접수했고, 유엔 창설 회원국이자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에 올랐습니다. 즉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 중국'은 중화민국입니다.
3. 국공내전과 분단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국민당과 공산당은 곧바로 내전에 돌입합니다. 부패와 인플레이션으로 민심을 잃은 국민당은 패배를 거듭했고,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은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 수립을 선포합니다. 장제스는 정부와 군대, 약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이끌고 대만으로 철수해 타이베이를 임시 수도로 삼았습니다.
이로써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두 정부가 각자 "우리가 진짜 중국"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의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대만'은 공식 국호가 여전히 '중화민국'인 정부입니다.
4. 냉전, 그리고 국제무대의 역전
처음에는 대만이 유리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미국은 공산권 확산을 막기 위해 제7함대를 대만해협에 보냈고, 1954년 대만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었습니다. 유엔의 중국 의석도 계속 중화민국(대만)이 차지했습니다.
흐름은 1970년대에 뒤집힙니다. 1971년 유엔총회 결의 2758호로 중국 대표권이 중화인민공화국에 넘어가고 대만은 유엔에서 나오게 됩니다. 이듬해 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고, 일본도 1972년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며 대만과 단교했습니다. 미국은 소련 견제를 위해 1979년 중국과 정식 수교하고 대만과 단교합니다.
다만 미국은 같은 해 '대만관계법'을 제정해 대만에 방어용 무기를 판매하고 비공식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 중국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 원칙'(대만은 중국의 일부)에 대해, 미국은 그런 입장이 있다는 것을 '인지(acknowledge)'할 뿐 동의한다고 하지는 않는 '하나의 중국 정책'이라는 절묘한 모호성을 유지해 왔습니다.
5. 대만의 민주화와 정체성 변화
대만은 장제스 시절 1947년 2·28 사건 등 강압 통치를 겪었고, 1949년부터 1987년까지 38년간 계엄령 아래 있었습니다. 1987년 계엄 해제 이후 빠르게 민주화되어 1996년 첫 총통 직선제를 실시했고, 이후 국민당과 민진당이 평화적으로 정권을 주고받는 민주국가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으로 여기는 사람이 크게 늘었습니다. 반면 중국은 대만을 반드시 통일해야 할 영토로 보며 무력 사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만해협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6. 그래서 이 뉴스가 왜 미묘한가
중국 공산당은 '항일전쟁 승리'를 자신들의 집권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서사로 활용해 왔고, 2015년부터는 9월 3일 전승절 대규모 열병식을 열고 있습니다. 시진핑이 제2차 세계대전 역사를 앞세워 일본을 '적성국가'로 규정하는 것은, 중국을 미국과 함께 싸운 승전국으로, 일본을 패전국으로 묶어 미·일 동맹 사이에 틈을 내려는 시도로 읽힙니다. 참고로 유엔 헌장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의 적이었던 나라를 가리키는 이른바 '적국 조항'이 사문화된 채 남아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서 보셨듯이 1940년대에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중국'은 지금 대만에 있는 중화민국이었고, 당시 공산당은 그 정부와 경쟁하던 세력이었습니다. 오늘날 중국이 그 승전의 유산을 독점적으로 계승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단순화된 서사이고, 미국과 일본은 그 뒤 수십 년 동안 화해해 동맹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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