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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행정 그 자체였던 '필리핀 가사관리사'

지식루프 2025. 2. 15.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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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행정 그 자체였던 '필리핀 가사관리사'

1. 시작부터 삐걱댄 정책

정부가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 정책을 발표했을 때, 많은 국민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가사노동의 부담을 덜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명분은 겉으로 보기에는 일리가 있어 보였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었다. 그중에서도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국내에 도입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졸속행정은 정책 기획부터 실행까지 허술함이 여실히 드러난 사례라 할 수 있다.

정부는 홍콩, 싱가포르 등의 사례를 참고해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국내에 도입하려 했지만, 각국의 사회적·문화적 배경과 정책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비슷한 모델을 가져오면 될 것’이라는 안이한 태도를 보였다. 그 결과, 필리핀 정부와의 협상 과정에서부터 차질이 빚어졌으며, 사업 시행 후에도 노동시장과 맞지 않는 여러 문제들이 연이어 터졌다.

2. 필리핀 정부와의 협상 실패

필리핀 가사관리사 도입 정책의 핵심은 필리핀 정부와의 협약이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 과정에서 기본적인 외교적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필리핀은 해외 노동자 보호에 매우 적극적인 국가이며, 자국민을 해외로 파견할 때 엄격한 노동 조건을 요구한다. 이에 따라 필리핀 정부는 한국이 제시한 임금 수준(월 180만 원 수준)이 국제적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했고, 협상이 난항을 겪었다.

또한, 필리핀 정부는 자국 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한국 정부에 강력한 보호 조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보다 ‘우리도 필요한 노동력이니 데려오겠다’는 태도로 일관했고, 결국 협상이 지연되면서 정책 시행 자체가 늦어졌다. 이는 사전에 철저한 조율 없이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였다.

3. 국내 노동시장과의 충돌

설령 협상이 원활히 진행되었다고 해도,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한국 가정에 잘 정착했을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을 통해 기대한 효과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맞벌이 부부의 가사 부담을 줄여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것, 둘째, 국내 가사노동 시장에서 인력난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정책은 오히려 시장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국내 가사도우미 시장은 이미 상당 부분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가사도우미의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임금 또한 지역과 업종에 따라 차이가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도입될 경우, 기존에 일하던 국내 가사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 더 낮아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 특히, 국내 가사도우미 노동자들의 연령층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이들에 대한 대책 없이 외국인 노동자를 대거 유입하는 것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조치였다.

4. 노동환경 보호 대책 부재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서 일할 때 겪는 대표적인 문제는 ‘노동권 보호’다. 한국은 여전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도 정부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한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을지에 대한 고민 없이 정책을 추진했다.

예를 들어,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가정 내에서 생활하는 형태로 고용될 경우, 근로시간이나 휴식 시간 보장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았다. 기존의 산업 분야에서도 기숙사 생활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과 인권 침해에 노출되는 사례가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정 내 노동환경을 감시하고 보호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 문제를 간과했고, 결국 노동권 보장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정책에 대한 반발이 커졌다.

5. 저출산 대책으로서의 실효성 부족

정부는 이 정책을 통해 맞벌이 부부의 가사 부담을 줄이고 출산율을 높이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정책 기획 단계에서부터 현실과 동떨어진 발상이었다.

첫째, 맞벌이 부부가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것은 단순히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가정 내 가사노동을 외부에 맡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한다. 따라서 비용이 낮아진다고 해서 가사도우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잘못되었다.

둘째, 저출산 문제의 핵심은 ‘가사노동’이 아니라 ‘육아 부담’이다. 정부는 가사관리사 도입이 육아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정작 육아와 관련된 서비스(예: 공공 보육시설 확대, 육아휴직 제도 개선)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가사노동의 부담을 덜어준다고 해서 출산율이 오를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는 저출산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다.

6. 정책 실패의 책임은 누구에게?

결국, 필리핀 가사관리사 도입 정책은 국민들의 반발과 실효성 논란 속에서 사실상 무산되었다. 그러나 이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소요된 행정력과 비용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정부는 졸속행정으로 인해 국민 세금을 낭비하고, 외국 정부와의 협상에서도 신뢰를 잃었으며, 국내 노동시장에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했다.

가장 큰 문제는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정부가 얻은 교훈이 무엇인지, 향후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떤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비슷한 졸속행정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7. 앞으로의 과제

필리핀 가사관리사 도입 정책은 한국 정부의 정책 기획 과정이 얼마나 허술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한 가사도우미 도입이 아니라, 보육 정책, 육아휴직 제도 개선 등 전반적인 시스템 개혁이 필요할 것이다. 

 

대왕고래프로젝트 등과 같은 더 이상의 거짓말, 눈가리고 아웅식 임시방편 정책은 이제 정말 그만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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